이번 설은 예년보다 길었다. 그래서 마음먹고 한번 쉬는 대로 쉬어보자고 마음먹었다. 해놓을 수 있는 일은 미리 해놓고, 만나야 할 사람은 댕겨 만나고... 마지막 하루 이틀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비워놓자고 계획했다. 하지만 연휴가 끝난 후 나의 소회는 아쉽다였다.

물론 갑자기 교우 가족의 장례를 치르게 된 이유도 있다. 그래도 새벽기도회가 사흘 동안 멈췄고, 수요예배 일정이 한주 건너뛰면서 분명 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. 알람 안 맞추고 늦잠을 잘 수도 있었고, 책을 내팽겨치며 설교 압박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.

그런데 문제가 있었다. 바로 나였다. 자다가 갑자기 눈을 뜬다. 새벽 5시... 알람이 없어도 자동 기상이다. 미뤄 놓은 드라마를 보려고 모니터를 켜놓는다. 잠시 후 급히 설교 스케줄이 잡혔다며 아내가 깨운다. 서둘러 성경을 찾고 책을 뒤진다. 뭔가 이상하다. 꿈이었다.

‘카페인 탓일 거야.’ 커피를 끊고 다시 잠든 밤... 눈을 뜬다. 새벽 5시... 어제 꾼 그 꿈에 다시 놀라 깬다. 아침 8시반... 이쯤 되면 병이다. 그것도 중증... 담임 십 년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.

곤히 잠든 아내를 더 재우려고 조용히 수도를 열어 토마토를 씻고 아침을 차린다. 그래도 시간이 남아 책을 편다. 묵상을 한다. 이런 내 모습이 신기해서 하나님께 여쭈었다. ‘주님, 저는 언제 쉬나요?’

예전에 선배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. 목사는 죽을 때까지 목사라고... 그 말씀의 의미를 잘 몰랐다. 알고 싶지도 않았다. 하지만 며칠의 자동 기상과 쫓기는 꿈을 경험하고는 이제 대충 그 뜻을 잡았다.

여우는 굴이 있고, 새는 집이 있지만,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으셨다. 주무실 시간이 부족해서 그러신 게 아니다. 방 잡을 돈이 없어 그러신 것도 아니다. 사명, 책임감, 그리고 아버지의 뜻... 감히 주님의 모습을 버금하진 못하겠지만 아주 조금 흉내라도 낸 것 같아 만족하기로 했다. 다음 연휴에는 다른 방식의 쉼을 찾아야겠다.^^;;